* 대화

2004-05-01

어제 고릴라에서 "오~파 어렸을 저~억엔"이라는 코너를 했다. 프로그램을 다 듣고 잠을 청하는데 문득 과거의 나의 모습이 궁금해 졌다. 사진 같은 것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이 아닌 내가 하는 이야기 내가 하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모습 말이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하며 지금까지 만나왔던 친구들 선생님들 다퉜던 사람 좋아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으나 오랜 기간 나의 모습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생각해 보니 결국은 부모님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본인은 경상도에서 태어난 남자이며 혈액형은 A형 게다가 국민학교(그 당시 고유명사이므로 넘어가자) 이후 공학을 다녀본적이 없으며 대학마저 공대를 나왔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중학교 이후로는 거의 부모님이랑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의례 끼니되면 밥을 주는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잘 보기도 힘든 그런 분이었다. 잠을 청하며 내가 그들의 모습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나 긴 대화를 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던 도중 최근 아버지의 마음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었던 적이 생각났다. 얼마전 정년퇴직을 하셨을 때 인데 그때 허전해서였을까 배신감이었을까 술을 많이 드시고 소란을 피우셨으며 싸우기도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그때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막혔던 댐이 터진것 처럼 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중언부언에 했던말을 몇 번씩 다시하곤 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만큼 그분을 잘 알게된 적도 없는 것 같다.

어제 생일특집(?) 프로그램을 들으며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가장 잘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생각났고 그 분들을 나도 잘 알고 싶어졌다. 역시 진심을 가지고 하는 말은 통한다는 것일까?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게 되면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으며 그분이 하시는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때에 밤늦은 1시의 귀가 시간 야참, 새벽 6시의 등교준비 언제나 말없이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언제나 나를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여 그렇다고 무조건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의지대로 행동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효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드는데 문득 가슴 한곳이 서늘해 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올해 나이 30. 그동안 꼭 움켜쥐고 있던 청춘이 젊음이 팔랑거리며 지금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손을 뻗으면 당장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너무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Copyright (c) 2002 Taiho, All rights reserved.
http://www.taiho.pe.kr